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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또는 다큐멘터리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1998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과 짧은 문장이어서 쉽게쉽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또한 문장 부호가 오로지 쉼표(,)와 마침표(.)만 있다는 점과 문단 나누기없이 문장들이 주욱 이어진다는 점도 책을 읽어나가는데 있어 편하게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내 스타일이라고 할까. 지금 이렇게 줄바꿈없이 주욱 이어서 쓰는 것도 이 책에 사용된 방법을 따라해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은 것은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미친 협상으로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때였다. 연이어 눈뜬 자들의 도시도 읽어 나갔다. 원래 의도는 이 두권의 책을 다 읽고 함께 리뷰를 쓰기로 결정했었다. 책의 흐름상 셋트로 나온거고,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그럴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하는 편이 리뷰를 쓰는데 더 좋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읽다가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이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의 내용이 그 촛불 시위를 비롯한 지금의 모든 현실과 비교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내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두려워서 망설였다는게 좀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제와서야 눈뜬 자들의 도시의 나머지 부분을 다 읽었다. 그리고 리뷰를 함께 작성하고 있다. 이 두 책을 다 읽은 지금 조금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모르겠다, 원래 이 책들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가 인간의 조건과 본성에 대한 물음과 고찰이었을 수도 있겠다. 책 홍보 문구에 있었다. '인간의 조건 3부작'이라고 말이다. 주제 사라마구가 쓴 '인간의 조건 3부작'은 눈먼 자들의 도시, 동굴, 도플갱어 이렇게 3부작이다. 요 책들만 놓고 보면 인간의 조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 나왔지 않는가, 눈이 멀어서 결국 생존 본능에 의한 약육강식의 비참한 세계를. 눈이 멀지 않은 한 여자만이 이성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줬을 뿐이다. 하지만 눈먼 자들의 도시와 그 후속판격인 눈뜬 자들의 도시의 연결은 꼭 그렇지만은 아닌거같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 비춰보면 말이다. 내가 이 책들을 읽은 시기가 시기인만큼 외부적인 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다. 아니다, 지금 이 시기가 아닌 다른 시기에 이 책을 읽었더라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 이유가 정치와 관련지을 수 있는 내용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의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말이다. 썩은 정치와 정치를 하겠다고 깝치는 그 새끼들에 대해서 가지는 불신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몇 해 전까지만해도 나도 그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현대 사람들의 사회에 대한 아주 직설적인 비유라고 생각한다.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바로 눈이 멀지 않은 한 사람, 세상을 올바른 시점에서 보려보고 이웃을 인도하는 한 여자를 통해서 말이다. 사태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고 은폐, 축소하려는 정부와 자신들이 직접 당하기 전까지 무관심한 국민들의 모습을 말이다. 백색실명 상태 이전부터 실명 상태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그 도시의 사람들은 몇 주간의 백색실명 상태에서 다시 시력을 회복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들이 실제로 보게 된 것과 진심으로 보게 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이제 백색 실명에서 벗어난 눈먼 자들의 도시는 눈뜬 자들의 도시이다. 이 눈뜬 자들은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꿰뚫어보는 눈뜬 사람들이다. 그래도 여전히 실명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정부를 구성하는 있는 눈먼 자들이다. 이들은 시민들의 순수한 의도와 진실을 끊임없이 왜곡하고, 숨기고, 억압한다. 자신들의 혀놀림에 놀아나지 않는 시민들을 비난할 뿐이다. 결국은 어떻게 될까. 이 눈뜬 자들은 결국은 정부의 언론장악을 통한 끈질긴 모함과 눈귀를 막는 선전, 그리고 극악무도한 술수로 인해 다시 자각하지 못하는 눈먼 자들이 되는 길로 쉽게 접어들고자 하는 것으로 끝난다. 난 눈먼 자들의 도시가 현대사회에 대한 직설적인 비유라고 했다. 그런데 눈뜬 자들의 도시는 이 현대사회에 대한 비유를 넘어선 소설이 아닌 아주 직설적인 보고서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만약 이 책이 정말로 소설이라면 눈뜬 자들의 혁명 아닌 혁명은 성공했어야했다. 책을 읽는 내심 그러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바램은 마지막 몇 문장으로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주제 사라마구의 세계가 어떻고, 인간의 조건 3부작이 어떻고 하면서 책 속의 숨은 의미까지 파헤칠만한 눈을 나는 가지지 못했다. 그저 보이는 것만 볼 뿐이고 보이는 것을 연관지었을 뿐이다. 눈뜬 자들의 도시에 사는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진정한 의미를 보지 못한 또 다른 눈먼 자일지도 모르겠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그 여자의 구원이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책은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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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지음 | 해냄출판사 펴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 눈먼 자들을 가둔 수용소와 이름없는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성의 근원적인 본질에서 가치와 존재, 현대 문명, 인간 사회를 조직화한 정치 권력 구조 비판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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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지음 | 해냄출판사 펴냄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온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동굴 , 도플갱어 와 함께 주제 사라마구 <인간의 조건> 3부작으로 평해지는 눈먼 자들의 도시 의 완결판이다. 선거를 소재로...


눈먼 자들의 도시가 영화로 만들어져서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약간 놀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화로 만들어질만한, 게다가 상업적인 흥행을 가져올만한 요소가 언뜻 봐서는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상상해보는 영화는 이렇다. 사람들의 갑작스런 백색실명. 혼란스런 상황에서의 선과 악의 대결. 끔찍하게 지저분한 도시에서의 생존을 위한 방황. 시각적으로 보여줄 만은 하겠지만 폭발적인 흥미를 끌만한 시각적 요소가 없어보인다. 백색의 단조로운 영상이 떠오른다. 눈먼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들의 지위나 상황 또는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로 서로를 인식했다. 그들간의 직접적인 접촉없이는 눈이 멀지 않은 여자가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대화를 이끌어야한다. 어쩌면 영화에서는 이름을 부여할지도 모르겠지만. 눈이 멀지 않은 여자를 중심으로 한 중요하지만 재미없는 대화가 상상된다. 책의 내용에는 원인과 결론이 없다. 왜 백색실명이
되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은 없다. 백색실명이 초래한 상황 설명만 있을 뿐이다. 책의 내용에만 충실하게 따라간다면 영화는 눈먼 사람들의 방황만 보여주다가 끝날거같다. 사실 핵심은 백색실명의 원인이 무엇인가가 아니고 백색실명의 숨은 의미가 무엇인가이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재미없는 심오한 대사들로 채워질까. 책을 읽으면서는 원초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재미 위주의 영상이 쉽사리 떠오르지는 않았다. 보고나서 이런 기분이 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이 되지 않을려고 했는데, 볼 수 없게 보여주는 영화때문에 본의아니게 눈먼(눈 감고 조는)자가 되어버렸군. 어쨌든 유명한 책 덕분에 영화가 관심을 끌고 있기는 한가보다. 나도 영화가 어떨지 기대된다. 분명 실망하겠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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